수첩

고향

덕지기 2008. 2. 17. 23:14
 
                                황조리 덕지기에서 만난 옥수수 채독과 할머니.
 
황새터와 덕지기 중간쯤에 자리한 성하밭도 올라가는 길이 엄청난 비탈길이다. 집이 있을 것같지 않은 산꼭대기 아래 여섯 채의 집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성하밭에 오르자 황조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어떻게 이 높은 삶을 견뎠을까. 성하밭은 집집이 도리깨질이 한창이다. 이옥춘 씨(65)네 마당에서도 어머니와 아들의 도리깨질이 한창이어서 투닥투닥 소리가 산자락을 울려댄다. 콩이 튀고, 먼지가 날린다. “먹고 살건 다 해서 먹고 살아요.” 이씨는 열아홉 나이에 시집 와 45년 넘게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살았다. 산이 높아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꼼짝없이 갇힌다. “갈게(가을에) 소 먹는 거 뭐 우리 먹는 거 다 준비해놓고, 한겨울에는 기냥 들어앉아 살아요. 눈이 마이 올 적이는 뭐 내 가슴까지 올 정도로 눈이 와노니 여서는 다 그래 살아요.” 이씨가 사는 집은 오래 전 굴피집이었다고 한다. 굴피 채취가 어려워지면서 돌능에집(돌너와집)으로 지붕을 바꿨다가 4년 전 양철지붕을 새로 해 얹었다. 성하밭의 집들은 강원도 산간의 많은 집들과 마찬가지로 양통집이다. 부엌에 외양간이 붙어 있고, 방이 겹으로 붙은 집. 추운 겨울을 나려면 집의 온기를 빼앗기지 않는 양통집이 제격인 것이다.
 
 황조리 황새터와 성하밭, 덕지기에서 만난 풍경들.
 
마을 한가운데는 성하밭 당집이 우거진 풀덤불을 둘러쓴 채 남아 있다. 이제는 당제를 지내지 않는지 당집의 문짝은 낡을대로 낡아서 만지는 순간 내려앉을 것만 같다. 그래도 황새터와 달리 성하밭은 사람이 부러 떠나지 않는 한 전형적인 두메마을의 모습을 얼마간은 유지할 것이다. 얼마간은 도리깨 타작 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이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떠나면 성하밭도 어쩔 수 없이 빈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산자락에 폭 잠겨서 자연의 식구가 다 된 두메마을 풍경은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살아있는 생활박물관이지만, 오늘날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는 풍경이기도 하다.
 
                                    글/사진: 이용한 http://blog.daum.net/binkond
 
<여행정보>
신리와 황조리에 가려면 태백과 삼척을 잇는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태백선 스위치백 구간인 심포리 인근 삼거리에서 가곡 방면 427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신리가 나온다. 황조리는 신리 문의골에서 넘어가거나 도계읍 38번 국도상에서 들어가야 한다. 숙박은 도계읍에 나와 해결하거나 대이리 군립공원 쪽에서 해결한다. 도계모텔 033-541-7777, 로얄장 541-5599, 신기파크 541-5666. 신리에 있는 너와마을 식당(552-5967)은 칡뿌리에서 추출한 녹말가루로 만든 칡전병으로 유명하다. 또한 삼척 시내의 부명 칼국수(574-8514)는 가시오가피 칼국수로 유명하며, 가곡면 동활리 보리밥집(572-4282)은 보리쌈밥을 알아준다. 또한 삼척의 포구마을에는 곰치국을 파는 횟집도 여럿 있다. 삼척에는 세계적인 동굴인 환선굴과 너와집, 굴피집 등을 볼 수 있는 대이리 군립공원,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썼다는 천은사, 오십천 줄기를 바라보며 자리한 죽서루 등의 가볼만한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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